기본적으로 하나의 정치체제는 하나의 경제체제와 연결된다. 가능한 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독재-엘리트주의이다. 익숙한 조합부터 살펴보자.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의 '자유'와 마찬가지 의미로, 시장에서의 자유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해서 자유민주주의이고, 북한은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체제 이름에 자유를 붙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라고 할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한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동시에,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이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체제이다. 대표 국가로는 한국, 일본, 미국이 있다. 다음으로 익숙한 조합은 사회주의, 독재-엘리트주의이다. 이 사회는 공산독재 주의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공산주의라고 지칭한다. 사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독재의 형태만 띠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지칭하므로 우리도 독재적인 공산주의를 그냥 공산주의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공산주의는 실제로 민주적 절차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집단은 오직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 노동자 집단뿐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 형태는 과도기 단계로,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다. 노동자가 독재하는 사회가 공산주의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라 부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왜냐하면 노동자에 의한 정치 형태도 아닐뿐더러, 90년대 중후반에 '선군정치'라고 해서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군을 중시하는 정치체제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군이 정치와 경제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총괄한다. 그런 까닭에 개념 분류상 노당자가 중심이 아닌, 군인이 중심이 된 북한 사회를 더 이상 공산주의 사회라 지칭하기 어렵다. 국가가 경제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고,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권위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니, 통제경제의 파시즘 체제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어쨌거나 느슨하게 묶어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 정치적으로는 독재주의를 추구하는 대표 국가는 소련, 중국, 북한이 있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독재-엘리트주의이다.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아직도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자유주의적 독재국가는 가능하지 않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논의했듯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는 시장의 자유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적 독재국가는 실제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 체제를 계획경제 사회라고 부른다. 이러한 국가 형태는 사실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1960~1980년대 군부독재 시기가 바로 이러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의 정치체제는 군부독재를 시행하면서도 경제정책은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이 체제는 국가가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계획경제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군부독재 시기를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볼 수는 없다. 군부정권의 시장 개입은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제한적인 개입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세금을 인상하고 규제를 확립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복지를 추구한 적극적인 개입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군부정권의 시장 개입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한 시장 투자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 현대사의 군부정권은 시장 확장을 추구한 자본주의적 독재정권이었다. 다음은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다. 한국은 역사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접한 경험이 거의 없어서 낯설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에게는 받아들이기 꺼림칙한 체제였다. 왜냐하면 6 · 25전쟁 이후 한국인에게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트라우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정신에 남은 외상은 전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작동하며 한국의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은 공산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은폐하기 급급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정당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보니, 비록 유럽에서 주요한 사회체제로 인정되고 있다 하더라도 사민주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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