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치러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대항해서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 여러 나라가 연합국을 형성했다. 우리는 앞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논하면서 국가가 왜 전쟁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알아보았다. 당시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자. 중세의 일본에는 천황이 존재했으나, 실질적인 힘은 지방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는 군부정권으로 통치권자인 쇼군이 통치했다. 중세의 끝인 19세기 중엽이 되면, 일본은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시작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근대화를 '메이지유신'이라고 한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의 막부체제가 종식되고,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열강들의 기술, 문화, 제도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구조에 따라 흘러갔다. 산업화는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주의는 공급과잉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수요를 늘려야 한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인 식민지가 필요하다.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1894년에 청일전쟁, 1904년에 러일전쟁을 일으켜 타이완, 조선, 사할린을 식민지로 얻었다. 그러나 발전을 계속하던 일본도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더 큰 시장인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세계열강 모두가 꿈꾸는 광활한 시장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이들과 대립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추축국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한 식민지의 확보, 그리고 무역협정에서의 국가적 우위. 그렇다면 연합국은 어떤 목적으로 전쟁에 대응했는가,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한 도덕적인 전쟁이란 없다. 자국의 시장인 식민지를 지키고 독일, 일본과의 무역협정에서 계속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응한 것이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얻으려는 국가와 식민지를 지키려는 국가 간의 전쟁이 제 2차 세계대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1945년 5월 독일이 먼저 항복했고,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핵폭탄이 투하되고 나서야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는 대신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날이 15일이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은 인류 역사에서 세계대전 종전일이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지역의 관점에서는 광복절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근대도 저물었다. 역사는 현대로 나아갔다.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들은 하나의 인종인 것은 틀림없으나 인간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학살은 독일 점령지역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실행하였다. 실험이 가장 심했던 지역은 유럽 중부와 동부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1939년에 700만 명이 넘었는데 약 500만 명이 학살당하였고, 특히 폴란드에서 300만 명, 소련에서 100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 잔인함은 얼마나 컸냐면 유대인 조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형당하였다. 다른 학살의 경우 기존 종교를 개종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동화되면 살 수 있었지만, 유럽 점령지역 유대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또한 생체 실험도 하였다. 해수 주사 실험의 목적은 여러 탈염 과정을 통해서 바닷물을 식수화시키는 몇 가지 방법들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실험에는 네 개의 표본 그룹으로 이루어진 44명의 실험 대상자가 동원되었다. 이 네 개의 그룹은 아예 식수를 공급하지 않은 집단과 해수만 공급한 집단, 베르카 방식에 의해 정화된 해수를 공급한 집단, 그리고 탈염된 해수를 공급한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실험 대상자들의 간이나 척추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했다. 또한 이들은 실험 기간 중 어떠한 음식도 섭취하지 못했다. 피실험자 대다수에게서 극심한 고통, 탈장, 경련, 환각, 정신착란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몇몇은 사망에 이르렀다. 냉동인간 실험은 동상에 걸린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일 남부의 다하우에서 냉동인간 실험을 행한다. 실험 대상자들은 얼음이 담긴 통에 담가졌고 그 결과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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